말 씀 묵 상/하늘 설교 요약

성령의 조명이 나를 살립니다

로뎀의 엘리야 2020. 10. 11. 07:19

성경 / 요한일서 2:7-11

제목 / 성령의 조명이 나를 살립니다

 

성도가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 비결은 성령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삶 가운데 빛을 비춰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새 계명과 옛 계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7~8).

요한일서 2:7-8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이전부터 내려온 옛 계명이었으나 새롭게 깨닫게 되어서 새 계명이 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행이 주는 유익은 발견의 기쁨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낯선 곳을 접하다 보면 새로운 눈이 생깁니다.

글쓰기에서도 일상의 내용을 낯설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함으로 깨우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빛을 비춰주는 성령 조명 사역이 이와 같습니다.

철학의 인식론에는 해양의 경험론과 대륙의 이성론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제3의 인식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경험과 이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만큼 즉 계시를 통하여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8).

 

1. 그리스도인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어법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가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판단과 결정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령이 비춰 주시는 대로 따라가며 사는 것입니다.

빛을 비춰 주시니 보이는 것이고, 보이니까 아는 것이고, 아니까 깨닫고, 깨달으니까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일차적으로 성령이 빛을 비춰 주시는 대로 인도함을 받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따라서, 언제나 성령께서 보여주시는 것에 대하여 민감해야 합니다.

세상의 가르침보다 성령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뛰는 인생이 가장 능력 있고 안전한 인생입니다(요일 2:20,27).

요한일서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한일서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광야로 간 빌립은 이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였고 그 사건이 초대교회와 가장 유사한 형태로 예수를 믿는 아프리카의 곱틱기독교의 유래가 되었습니다(8:26).

베드로는 환상을 통하여 이방인 복음 증거에 대한 편견을 깨고 주님께 순종하여 고넬료의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10:19).

신앙인은 내가 무엇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어법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가 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내가창고를 짓고, “내가준비하겠다고 합니다.

그 말에 하나님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하셨습니다.

능동태 인생은 이렇게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의지는 대단해 보이지만 성도의 삶은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가장 풍성한 삶을 사는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 성령의 조명을 받는 인생은 잘못되어도 무너질 이유가 없습니다.

성령의 조명을 받는 인생들은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인생 궤도가 수정될 수 있습니다.

100% 순종할 수 있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인생이 하나님 뜻하신 궤도에서 벗어날 때라도 성령께서 빛을 비춰 주심을 통해서 궤도를 수정하게 됩니다.

잘못되었다 해도 무너질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새로운 길을 보여주셔서 인생을 교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아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따라(16) 궤도를 수정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역사가 토인비는 사도 바울이 탄 배는 유럽 문명을 실은 배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복음 전파의 속도가 유럽보다 아시아가 늦은 이유가 바로 이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시아를 미워하고 유럽을 사랑해서 먼저 그곳으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모순된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지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명은 이방인에게 복음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9:15).

자기 자신도 이방인의 사도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12:13).

그런데도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는 전혀 필요가 없는 할례를 단지 유대인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행했습니다(16:2).

그의 모순된 행동에 하나님께서는 정신차리라는 채찍을 내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분노는 결이 맞지 않는 것에 대한 훈계였습니다.

사명에 맞는 행동과 걸음이 일치하는 인생이 승리하는 인생입니다.

중국 선교에 사명이 있다면서 미국이나 뉴질랜드의 이민 가서 20~30년 체류하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성령께서 정신차리라고 하실 것입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돈 많은 형제와 믿음 좋은 형제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매를 보았습니다.

갈등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사명과 목표와 걸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그 안에 욕심이 있어서 갈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우상숭배 특징을 보면 바알도 섬기고 여호와도 섬겼습니다.

두 마음은 우상숭배의 대표적인 마음입니다.

그 자체가 우상숭배입니다.

배우자 문제로 갈등하게 된다면 그때는 결혼할 때가 아니라 목표를 선명히 해야 할 때입니다.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비두니아는 바울이 갈 길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베드로가 그 곳을 가게 되었습니다(벧전1:1).

베드로전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엉뚱하게 바울이 가고자 하니까 성령이 막으셨습니다.

옛말에 죽은 말에 올라타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인생 가운데 잘못된 말을 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두니아라는 말을 타고 있으면 죽은 말입니다.

다윗의 목표는 골리앗 물리치는 것이었기에 자기 몸에 맞지 않는 갑옷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갑옷을 입지 않고 날렵하고 기동력이 있는 물맷돌로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어떤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판단을 내릴 때 내 마음이 편한 정도와 기분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과 목표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목표를 이룰 수 있으면 불편해도 가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에서 비두니아라는 죽은 말을 버리고, 빌립보라는 말을 타고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믿음의 신실한 종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일어나 깨어 기도합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 갑시다.

성령의 조명하시는 사명을 따라 갑시다.

매일 성령의 조명하심에 따라 하루를 온전히 살게 하시고

혹여 궤도를 벗어나려 할 때에 과감히 막으시고 성령의 인도하시는 길을 가게 하소서.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가정을 위해,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코로나 19가 떠나기 위해 기도의 분량을 채우기길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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