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묵 상/요한복음 장별

구원의 길

로뎀의 엘리야 2006. 5. 2. 06:25

성경/ 요한 복음 10장
제목/ 구원의 길

 

인간에게 있어서 구원의 방법, 영생의 길은 가장 중요한 소망이며 영원한 갈망일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원시적이든 과학적이든 모든 민족마다 나름대로의 구원의 방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방법, 영생의 길이 장난삼아 만들어 낼 수 없듯이 각 민족마다 구원의 방법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곧 구원의 방법이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수학에도 단 하나의 공식이 있듯이 구원의 길 역시 단 하나의 공식이 있어서 그 길만이 구원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단 하나의 구원의 길을 제시합니다.

 

첫째, 주님은 당신만이 구원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2절과 7-8절에서 주님은 자신이 양들의 대문이며 이 문을 통해서만이 꼴을 얻을 수 있고, 생명을 얻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주님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8)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을 유대 지도자들과 비교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통로는 오직 예수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적으로 예수님보다 앞서서 지도자로 자처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지도자들은 절도나 강도로 간주하셨습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예수님이나 부처를 동격으로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구세주이듯이, 불교에는 부처가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혼합종교로서 혼음과 같은 악한 생각을 가진 자들의 말입니다. 오직 나에게 한 분의 아버지와 어머니만이 계시듯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실 분은 한 분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분을 찾는 길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만이 구원의 문으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많이 암송되는 성경구절 중에 하나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안전함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과 같이 동일한 위로와 힘을 주시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나는 선한 목자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많은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떠났거나 실족했습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왜 "선한 목자"라는 말에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였겠습니까? 구약에서 목자란 백성들을 다스리는 통치자요. 왕이지만 그분은 곧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나의 목자라고 했던 그 목자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경악을 하며 실족하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이제까지 목자 노릇했던 유대지도자들을 향하여 도둑이며 삯꾼이라고 그들을 심판하였습니다. 도둑은 양들을 멸망시킬 뿐이며, 삯군은 자기 자신과 명예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자들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만 삯군은 절대로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다. 단지 지도자라는 이름과 권세만을 탐할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양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갖고 계셨고, 양들의 깊은 곳까지 아시며 철저하게 사랑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선한 목자라는 사실을 몸소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양을 위해서 죽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의 지도자라 칭하는 자들은 백성들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서 백성들을 이용해 먹었고, 자신의 편리를 위해서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들을 향해, "삯군은 목사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라고 했던 것입니다(12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권세를 느끼고 마음에 찔렸는지 24절에서,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는 너는 누구냐, 네가 그리스도라도 되느냐는 말입니다. 이들의 요구에 주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30). 하나님과 동일한 분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유대인들의 분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인간은 '거룩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약의 말씀을 예로 들면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설명하셨습니다. 34절에서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신 말씀은 시편 82편 6절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집행하는 유대 지도자들을 하나님께서 '신들'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신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집행할 때는 신의 뜻에 따라 '신들' 혹은 '지존자의 아들을'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82편을 보면 신들이라고 칭함을 받았던 자들은 모두다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로 살지 못하여 모두다 '신들의 자격'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수행하셨기 때문에 신이라는 칭호가 합당하다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시편 82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신으로 오신 주님께서 모든 사역에서 완성하고 계시기 때문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라고 역설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에서 사람을 신이라고 하신 말씀이 주님에 의해서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에 의해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 사람과 달리 신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호를 받는 것은 최소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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