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요한 복음 18장
제목/ 고난의 현장에 서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려면 십자가에 달려야 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유다의 군대와 대제사장들이 횃불과 병기를 갖고 잡으러 오는 것을 맞이하셨습니다.
사람들 같으면
처음에는 큰소리치다가도 경찰에 잡혀가면 대부분 꼬리를 내리고 잘 봐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들이 당신을 잡으러 왔음에도 "내가
나사렛 예수"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주님의 권위와 위엄 앞에 오히려 이들이 엎드러지기까지 했습니다.
베드로가 흥분해서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었지만 오히려 주님은 베드로에게 검을 꽂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제자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8절에서, "나를 찾는 다면 제자들이 가는 것은 용납해 주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양들만은 머리카락 하나라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하시는 주님의 보호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고난의 목적이 허물 많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백성들은 그것을 모르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첫째, 고난에 직면한 주님 앞에 불신앙의 사람 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로마 군인들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의
하속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잡으려다가 "땅에 엎드려질"정도로 예수님의 권위를 느꼈으면서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말고의 귀를 만져서 치료해주신 사건을 보았음에도 이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예수님을 체포해서 끌고 갔던 강퍅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은 이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강조하고 벌어지는 일들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사건이 터져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완악한 세대입니다.
또 하나는 베드로의 자만심입니다.
베드로는 하루 전에 주님으로부터
주님을 부인할 것을 경고 받았음에도 믿음을 갖지 못하고 깨어있지 못하고 결국은 작은 계집종의 말에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문제는 주님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못한데서 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고
장담할 때 13장 38절에서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을 해주시면서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에게도
믿음을 갖도록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함께 깨어 기도하라고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졸고만 있다가 이렇게
허망하게 주님을 부인하는 꼴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부인은 베드로의 실수를 책망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처음에 닥친 작은 어려움을 모면하려고 생각 없이 한 행동들이 나중에는 커다란 족쇄와 수렁이 되기도
합니다. 작은 실수를 덮기 위해서 더 큰 거짓말과 죄를 짓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한다고 해도 말씀과 기도를
소홀히 하면 베드로처럼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 깨달아서 말씀과 기도에 힘써 깨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주님은 이런 자들을 위하여 고난의 현장 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고난이 시작되는 빌라도 법정에 서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죄 없는 예수님을 법정에 세우려니 없는 죄를 덮어 씌웠는데 그 죄목이 바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입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묻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가 유대의 왕이라고 해서 잡아서 내게 넘겼는데 그 말이 사실이냐"라고 물었습니다. 빌라도의 이 질문에는
"혹시 로마 정부에 대해서 방해하는 나라가 아니냐"라는 의심석인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유대나라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빌라도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가 그 하나님 나라의 왕이
아니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빌라도의 말에 주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나라'에 대해서 말은 하지만
빌라도가 말하는 '나라'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나라'사이에는 너무도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가 다스리는 이스라엘에 예수가
왕이 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물어보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신 나라는 이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로마가
다스리는 나라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독립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셔서 세우려는 나라는 하늘나라에 세워진 나라로서 이 땅에 있는 주님의
백성들 마음속에 영적으로 세우시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과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꾸 세상적으로 이해해서 권력과 인맥과 재물을 통해서 힘을 가지고 세우는 나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고 세우려는 나라는 사람의 힘과 권력과 돈으로 세우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죽어야
세워지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이렇게 대제사장의 하속들에게 끌려가면서, 또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면서도
권세를 잃지 않고 당당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피흘려 죽으셔서 세우신 나라는 지금 우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주님 나라의 백성으로 주님의 다스림속에 살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잊지 마시고 주님처럼 섬기고 희생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물질이나 권세 앞에 비굴해지지 마시고 작은 일에 혈기부리지 마시고 주님처럼 당당하게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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