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한 기쁨(성공)
소유한 기쁨(성공)
사람은 심리적으로 두 가지 경우에 성공의 쾌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하나는 소유의 욕망이 충족되어질 때 성공의 쾌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재산을 소유한다’ ‘명예를 얻는다’ ‘아내를 얻는다’ ‘학벌을 가진다’ ‘학위를 가진다’ ‘지식을 가진다’ 기타 아름다운 것 등등, 이처럼 많고 좋고 아름다운 것을 내 것으로 소유했을 때, 즉 소유의 욕망이 충족되어졌을 때 인간은 누구나 성공의 쾌감을 느끼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느끼는 성공의 쾌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의 성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 욕구의 만족을 통서 이루어지는 행복입니다.
곧 소유는 못할지라도 창조의 욕구가 충족되어질 때 인간은 성공의 쾌감을 느끼도록 되어 있습니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메리카 대륙을 자기 것으로 소유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의 탐험심을 통해서 새로운 대륙이 발견되었을 때 그는 한없는 성공의 쾌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켜고 생활하는 전등은 에디슨이 발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벌써 1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의 일생을 돌아볼 때 전등을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가난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가난할 대로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전등을 발명했지만 전등의 결과로써 얻어지는 소유의 충족은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소유는 못했을지라도, 부는 누리지 못했을지라도, 훌륭한 결과를 창조한 사람인 점에서 에디슨은 모든 사람에게 발명의 왕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입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등산가가 남들이 정복하지 못하는 산을 정복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산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남들이 가지 않은 그 곳에 자기가 갔다는, 즉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였다고 하는 성취감 속에서 누구도 맛보지 못하는 성공의 쾌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소유는 못해도 창조의 욕구가 충족되어질 때 기쁨을 느끼고 성공의 쾌감을 가집니다.
화가가 작품을 그려 나갈 때에 이 작품을 완성한 다음에 우리 집 벽에 걸어 놓아 두겠다는 그런 소유의 욕망보다는, 그 그림을 그려 나가는 과정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즉 그 속에서 성공의 희열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그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창조의 욕구가 충족되어질 때 성공의 쾌감을 느끼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역사를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수많은 인류가 살아왔지만 역사책에 자기 이름 석자를 남긴 사람은 소유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아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소유는 못했을지라도 창조의 욕구를 충족시켜 나감으로 인류에 기여한 사람이 역사책 속에 뿐만 아니라 역사의 책 전체를 장식해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젊은 청소년들 모습 속에서 성공의 목표를 지나치게 소유의 욕망에 두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 삶을 통해서 자기의 노력을 통해서 자기의 모든 헌신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로서 기여하겠다는 이런 생각이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창조의 욕구에 성공의 개념을 둔 사람은 한 과정 한 과정을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즉 과정을 중요시하여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그에게 있어서 오늘은 내일을 위한 과정이고 내일은 모레를 위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유의 욕구에 성공의 개념을 두고 사는 사람은 결과에만 집착합니다.
오직 그 소유라는 결과를 붙잡기 위해 과정에 있어서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합니다.
그야말로 과정이 없는 결과만 붙잡고 사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