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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

로뎀의 엘리야 2009. 4. 3. 08:22
고난의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

"가난한 자"를 구약을 배경으로 이해하면, 기업을 잃은 자, 빚진 자,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남의 노예가 된 자 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란 
기업이 회복되고, 빚이 갚아 지며, 종살이에서 풀려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는 가장 가까운 친족이 빚을 대신 갚아주는 제도가 있습니다.(레 25:24-28).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빚을  십자가 고난으로 갚으셨습니다. 
중한 죄는 사형으로 그 값을 치루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하여 
대신 형벌을 받음으로 죄의 빚을 갚아주셨습니다.  
(마 26:28)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8)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되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 되는 것이 옛 언약이었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는 것이 바로 새언약입니다. 
옛언약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이 기업으로 주어졌듯이 
이 새언약에 약속된 것은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이러한 새언약의 체결을 위한 제사가 바로 십자가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히 9:15)"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없는 사람들, 
즉 죄의 빚을 값지 못해서 사단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예수께서 죽음으로 죄의 빚을 갚고 사망에서 해방하여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자녀가 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마태 25:34) "내 아버지께 복받은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이 유산을 받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갈 4:7)"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를 자니라." 

예수께서는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길을 트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 1:12)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이 죄사함과 새언약을 위한 고난으로서의 의미가 있다면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왜 성도들은 고난을 받습니까? 
우리는 고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공유하는 고난의 코이노니아를 말씀합니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코이노니아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을 예수님과 함께 나눔, 
이러한 고난의 나눔은 그리스도를 본받음의 극치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코이노니아하여
순교하게 되는 것을 제사라고 표현합니다.  
(빌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한 제사였듯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코이노니아하는 순교의 죽음도 제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난의 코이노니아는 어떻게 발생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함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요일 1:6-7)"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코이노니아)이 있다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 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하나님과 무엇을 공유함이 있다)가 있다면 
    빛 가운데 행하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함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 행함이 있어야 그리스도와 행함을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뜻 대로 행하시다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미움을 사시고 결국 고난을 당하게 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뜻 대로 살 때에 동일하게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며, 
    결국 그리스도와 고난을 코이노니아하게 될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다면 우리는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는데 
    그들과 코이노니아한 자들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 23:30)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의 피를 흘리는데 코이노니아하고 말았습니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코이노니아하기 보다는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코이노니아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역사와 사회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종교적 특권에 집착하고, 기득권 체제나 조중동 시각에 함몰되어 갈 때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기 보다는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자리에 참예하는 비극을 겪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시대에 있었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후예가 되는 것입니다. 
    늘 우리는 삼가 조심하며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복음전파사역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고후 1:8-9)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히브리서는 코이노니아된 고난의 예로서 
     "비방" "고통" "수치를 당함" "기업을 빼앗김"을 듭니다. 
    (히10:32-34)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코이노니아하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우리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고난을 코이노니아하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자는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벧후 4:13-14)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
    (고난을 코이노니아)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베드로는 자신을 고난의 증인으로서 영광을 코이노니아할 자라고 소개합니다.  
    (벧후 5: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코이노니아할 자)로라."
    베드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코이노니아하였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코이노니아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영을 그리스도와 함께 코이노니아할 것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고후 1:5)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받는 고난을 코이노니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함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고후 1:7)"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 (코이노니아하는 자)가 된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그리스도의 고난을 코이노니아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다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다가 당하는 고난은 
    예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려고 당하신 
    그분의 고난을 코이노니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말하다가 나눔과 섬김의
    진리를 싫어하는 특권층, 종교기득권층에 의하여 핍박을 받게 된다면 
    그 또한 예수 십자가의 고난을 코이노니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고난, 개혁과 선교를 위한 고난, 
    이 고난의 길로 부르신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미리 고난의 길을 가신 예수님은 이제 "나를 따르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ㅡ고난의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  /신현우교수님의 글 중에서 발췌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