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묵 상/새벽 묵상

하나님을 재판한 사람 (마태복음 26:57-68)

로뎀의 엘리야 2012. 4. 5. 09:06

 

     

    하나님을 재판한 사람 (마태복음 26:57-68)

     

    세상에서 가장 불합리한 것이 권력을

    등에 진 죄인이 의인을 재판하는 일입니다.

    해먹기는 자기들이 해먹고 그 죄를 힘없고 연약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고

    사법부에 압력을 가해 처벌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바람을 피해갑니다.

    이런 일은 어느 시대에나 권력을 중심으로 늘 있었던 일입니다.

    겟세마네에서 붙잡히신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 앞으로 끌려가십니다.

    그곳엔 이미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 수 있을까’ 생각했던

    사람들이 전부 모여 있고,

    그들의 대표로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표적인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는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신 것만 나타나 있지만,

    사실은 빌라도보다 예수님의 고난에

    더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대제사장 「가야바」입니다.

    ◉ 본문은 그 이유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가야바는 거짓 증인을 동원했습니다.

    59~60절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얼마나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죽이고는 싶은데 적당한 죄목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내놓고 거짓 증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거짓 증인을 서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나같이 권력에 빌붙어 부스러기를 얻어먹으려는 잡배들입니다.

    그런데 그 거짓 증언들이 너무 황당해서 쓸 만한 것이 없는 겁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이 와서는 제법 구미에 맞는 그럴듯한 증거를 들이댔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죄목은 죄 같지도 않은 증거로 시작됩니다.

    ‘이제 됐구나’ 싶었는지 대제사장이 일어나 예수님께 묻습니다.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62절)

    그래도 주님이 침묵하시자 답답해진 「가야바」가 이미 정해놓은

    각본대로 예수님을 몰아갑니다.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3절)

    가야바」의 이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사실대로 말씀하십니다.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64절)

    이 말씀 끝에 「가야바」 자기 옷을 찢으며 말합니다.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생각이 어떠하뇨?”

    이리 묻자 모인 무리가 한결같이 대답합니다.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불의한 재판입니다.

    예수님의 증언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미 각본이 다 짜여진 재판이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달리 대답하셨을지라도 결론은 사형으로 귀결지어졌을 것입니다.

    그 불의한 재판을 주도한 사람이 대제사장 「가야바」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가장 잘 받들어 섬겨야 하는 직책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불의한 재판으로 몰아갔습니다.

     

    둘째, 가야바는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예수님의 죄목이 ‘하나님 참람죄’였지만,

    실은 대제사장과 지도자들의 미움을 산 것이 사형선고의 진짜 원인입니다.

    평소에 예수님께서 백성의 지도자들인

    이 사람들의 불의를 지적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매섭게, 아주 신랄하게 그들의 부패와

    위선을 벗겨내셨고, 저들은 그것이 싫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양심을 자극할 때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생각하고 주의 종들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대제사장과 같은 우를 범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듣고서 미움의 감정을 키우는 것은

    말씀이신 예수님께 감히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가야바는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가야바」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확정하고는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따귀까지 때리면서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68절)며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남을 조롱한다는 것은 자신의 뒤에 무엇인가

    구린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죄가 있으시고 그 죄를 따라

    공정하게 판결을 했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이렇게까지 죄가 확정된 사람을 조롱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한껏 조롱하면서

    자신들의 사악한 감정을 풀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이 아니라 자신들이 죄인임을 스스로 증거 하는 모습입니다.

    대제사장과 지도자들은

    지금 하나님을 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과연 이들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도 그렇게 용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데 용감한 것은 죽고 싶은 환장에 해당합니다.

    우리로 이런 교만 죄에 빠지지 않게 하시길

    기도하는 이 새벽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 2012년 4월 5일 새벽기도회 설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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