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묵 상/새벽 묵상

십자가! 십자가! (마태복음 27:45-50)

로뎀의 엘리야 2012. 4. 6. 08:41

 

     

    십자가! 십자가! (마태복음 27:45-50)

     

    ※ 피를 부르던 로마 황제 「네로」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절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로마 군에서 정예 부대로 손꼽히는 12연대 병사들 중에 그리스도인이 많이 생겼다’는

    보고가 네로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보고를 들은 즉시 네로는 부대의 지휘관에게

    ‘그리스도인을 색출하여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명령을 받은 지휘관이 12연대 소속의

    군사 중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색출해 냈습니다.

    모두 40명, 지휘관은 예상외의 숫자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죽이라는 황제의 분부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신앙을 버리는 자는 살려 준다.

    ” 지휘관은 마지막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꽁꽁 얼어붙은 호수로 보내졌고 온 몸의 옷이 남김없이 벗겨졌습니다.

    추운 겨울 살을 에이는 바람에 그들은 찬양을 하며 호수 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호수 가까운 곳에는 천막이 쳐있었고,

    그 안에는 따뜻한 물이 담긴 목욕통이 놓여 있었습니다.

    신앙을 포기하는 자를 살려 주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몸이 사지의 끝 부분부터 얼어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도록 40명의 병사들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신앙을 버리도록 권유하는 지휘관의 회유책은 계속되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죽음이 아득하게 몰려오는 것만 같은

    그 순간 한 병사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호수 위를 가로질러 천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신앙을 포기한 것입니다.

    들어가서 천막 안의 따뜻한 목욕통에 몸을 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몸 속 깊숙이 까지 얼었던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근 병사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곧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 모습을 목격한 지휘관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밖을 내다보았는데,

    호수 위 하늘에 40명의 천사가 40개의 면류관을 들고 춤을 추다가

    그 중 한 천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지휘관은 천천히 투구와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용감하게 호수의 얼음 위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지휘관은 신앙을 버린 병사의 죽음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신했으며,

    그가 버린 면류관을 대신 받으려고 죽음의 길로 나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신 성금요일입니다.

    저는 고난주간 동안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순교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기회가 오면 나도 순교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고통이 더 깊이 있게

    다가와 은혜가 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순교에 초점을 맞추고 십자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십자가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3중의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라는 영적인 고통,

    살이 찢기고 피를 쏟아 붓는 신체적인 고통,

    무지한 군중들의 조소와 비난으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을 겹겹이 받으셨습니다.

    이 고통을 어떻게, 감히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형 죄인에게 가장 오랫동안 고통을 주는 사형 방법입니다.

    죽은 뒤에는 그 시신조차 날짐승에게 밥이 되게 하는 비인간적인 처형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자국의 시민들에게는 이 형벌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국민들 가운데서도 노예나 잔인한 흉악범이나 반역자에게만

    극히 제한적으로 십자가 형벌을 받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극심한 고통을 주님께서 나를 위해 당하셨으니 나는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둘째, 십자가는 수치였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예수님은 사람들 가운데 들어올려진 것입니다.

    좋은 일로 사람들 앞에 들리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체험입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일로 자신이 공개되는 것은 너무도 참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그래서 범죄자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웃옷 속으로 자라목을 들여 넣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수치스러운 몸으로 십자가에 들어올려 지셨습니다.

    사람으로 취급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리 사형수라도 사람으로서의 기본은 지켜 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수형을 당하는 사람의 머리에다 보자기를 씌우는 것입니다.

    사형 당할 때 최소한의 안정을 주고,

    또 죽음의 순간에 그의 얼굴에 나타나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그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지켜주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그 기본까지도 박탈당하셨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실 때 하나님으로서의 기본을 잃으시더니,

    인간이 되신 다음엔 인간으로서의 기본까지 잃으시는 수치를 당하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알량한 자존심에 예수님을 팔아먹는 우리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의 이 수치 앞에서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 앞에서 순교를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순교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십자가가 면류관이 되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순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는 은혜가

    이 새벽 여러분의 것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 2012년 4월 6일 새벽기도회 설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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