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예수제자훈련

◈ 어떻게 해야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1) ◈

로뎀의 엘리야 2007. 5. 11. 11:29

 

◈ 어떻게 해야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1)  ◈

 

듣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들을수 있다면,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못 듣는다고, 반드시 불행하다는 말은 아니다.
헬렌켈러는 세상소리는 못 들었지만,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듣는다는 것은, 소리의 주체가 있다는 것이다.
소리가 없다면, 들을 필요 또한 없을 것이다.
소리가 있는데 듣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고통스럽고 불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듣지 못하고 하루를 살아 보라!
그것은 비극일 것이다.


세상에는 소리로 충만하다.
자연의 소리, 기계소리, 자동차소리, 사람소리, 핸드폰소리, 음악소리 인간은 하루도 소리를 떠나서는 살수가 없다.
소리를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굉음이나 소음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하나님의 속성중에 하나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니 하나님이 말씀이시다.
하나님은 이 땅에 말씀으로 오셨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고 말씀하시기를 원하신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순종하며, 듣지 못하는데 어찌 말할수 있을까?
들어야 말하고, 듣는 만큼 순종이 가능하다.
이러므로, 들음의 size는 순종의 size다.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먼저 '엄마'라고 말하기 전에, 엄마의 소리를 알아 듣는다.
그리고 반응한다.
그때부터 엄마와 아이는 교감을 갖게 되고, 신뢰하게 되고, 동행하게 되고, 그후로는 하나가 된다.
아이는 엄마의 소리를 듣고, 평안을 얻게 되고 엄마는 아이의 소리를 듣고,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게 된다.

 

마찬가지로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
양에게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 것은,생존과 관련된 것이기에 아주 중요하다.
알아듣지 못하면 맹수에게 잡혀 죽을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주님과 하나가 되려면,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듣지 못하면 순종이 안되고, 듣지 못하면 하나가 아니며, 듣지 못하면 주님과 동행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여행을 하려면, 가이드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말을 못 알아들으면, 순종이 불가능하고 가이드와 동행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주님과 동행 할 수 있을까?
교회 열심히 나오는 것 그것을 동행이라 말할 수 없다.
뜨겁게 기도하는 것 그것도 동행이라 말할 수는 없다.
두손 들어 찬양하는 것 그것도 동행은 아니며 죽도록 충성하는 것 그것 또한 동행의 본질은 아니다.
선하게 사는 것 그것은 동행이 아니며 성경을 많이 아는 것 그것 또한 동행은 아니다.
주님과 동행하려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에녹은 365년을, 노아는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
저들은 세상이 악하고, 불의하고, 소망없을 때에도 주님과 동행함으로 믿음을 지킬 수 있었고, 고난을 이길 수 있었다.
고난중에도 죄악된 세상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며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들어야 순종할 것 아닌가?
들어야 따라갈 것 아닌가?
듣지 못하면, 내 맘대로.. 내 뜻대로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초이며 전부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안내방송을 못 듣는거나 잘못 듣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목적지와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것뿐인가?
불이나도...사고가 나도 방송을 못 듣는다면, 대피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열심이 있고, 충성하고, 헌신하고, 사역을 잘 한다하여도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민감하지 못하고  둔감하다면 그의 삶과 사역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보는 것 말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침묵하신 적이 없으시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한 것 뿐이다.

세상소리,  사람의 소리, 내 소리가 더 크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때때로 고난이라는 확성기를 통하여 듣게 하신다.
우리는 흔히 말소리가 안 들리면, 확성기나 마이크를 이용한다.
그러면 소리가 증폭됨으로 명확하게 잘 들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평안하고 형통할 때는, 잘 안들리던 주님의 음성도 고난중에는 잘 들린다.
그것은 고난이 확성기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은 여러가지로 유익이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일에 민감하고 집중해야, 신앙생활이, 온전하게 성숙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영적농아인'이 너무 많다.

요즈음 성도들을 만나보면, 말(?)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도무지 듣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사람 앞에서는 말이 많아진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민감하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성도들이 그립다.
잘 들어주는 성도들을 만나고프다.
그런 목회자이고 싶다.

 

※ (다음 편으로 이여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