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우는 시간은 채우는 시간이다 ◈
헨리 나우웬은 홀로 하나님 앞에 있는 시간을 가리켜 비우는 시간이자 채우는 시간이라고 했다. 이 시간은 날마다 내 실상의 모습에 직면하여 나의 '거짓 자아'를 단념하는 시간이다. 거짓 자아를 구성하는 쌍둥이인 욕심과 분노, 그리고 그 밖의 악한 생각, 나쁜 습관, 충동적 행동 등을 다루는 하루 중 유일한 시간이기에, 자신의 굳은 마음을 내려놓는 이 시간은 고투의 시간이다. 나우웬은 이 시간을 '뜨거운 화덕' 또는 '변화의 도가니'라고 표현한다. 너무나 바싹 달라붙는 죄에서 해방되는 회개의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고투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는 자신을 비우는 동안 두려움을 몰아내는 그분의 사랑으로 충만히 채워진다. 매일 이른 아침은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시간, 내 지친 영혼을 위한 그분의 치유를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우리는 그분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주시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면 날마다 변화된다. 묵상을 하는 동안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나님의 신비를 깨닫고, 그분과의 친밀함 속으로 들어가며, 인격이 새로워진다.
이러한 신비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기에, 이 신비에 들어간 사람들은 이 진리를 세상과 나누라는 부르심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먼저 자신의 개인적인 진리가 되어 삶에 적용될 때에라야 비로소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 자신이 먼저 변화되고 진리에 의해 자유케 될 때,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타 종교의 묵상은 정신수양으로서의 요가든, 초월적 명상이든, 찾고자 하는 것이 '자신의 참모습'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묵상 가운데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다.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 나를 변화시키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길 소원한다.
토마스 머튼은 이 둘을 잘 대조했다.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두셔서 자신의 빛을 사람의 영혼으로 전달하는 투명한 창문이 되게 했다. 날이 밝을 때는 이 창문을 통해 밖의 빛을 볼 수 있다. 밤이 와도 안에 불빛이 없다면 여전히 창문을 통해 밖의 빛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방안에 불을 켜면 밖은 보이지 않고 창유리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빛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전등을 켜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창유리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그것을 또 다른 영적 세계라고 생각한다. 고등종교의 지도자, 특히 붓다와 같은 불교 지도자는 통찰력이 있었으나 그것은 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는 창문에 비친 영상들이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소원이 투영된 것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창문이며, 창문유리 너머에 빛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세계의 주요 종교에서 행하는 명상들은 하나님을 찾는 애절한 표현의 다른 이름임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아직도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며 생명의 의미와 근원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묵상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자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까지 결코 만족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이 말씀하실 때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안에 심어 주셨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응할 때에야 자신의 진정한 존엄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를 만나주신다. 하나님 앞에서 침묵 가운데 기다릴 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침묵은 말씀의 집이다. T. S. 엘리엇은 '사순절 첫날(Ash Wednesday)'이라는 시에서 "말씀은 어디 있고, 어디서 울려 퍼질 것인가? 여기는 아니다. 충분한 침묵이 없다"라고 한탄했다. 침묵이란 단순히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태도나 자세를 말한다. 효과적인 침묵을 위해 적막을 찾아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그러면 이내 소음은 자신 안에 있지, 밖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평화로운 침묵을 얻으려면 우리 자신을 넘어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막의 교부들에게서 유래된, 침묵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 젊은 제자가 스승에게 침묵을 발견하는 방법을 물었다.
"제게 침묵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글쎄, 자네는 그걸 어디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제 속 깊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만 있다면 소음을 피하리라고 확신하는데, 어렵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제자는 스승이 도와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영혼은 늘 고요했으니까.
"그래, 나도 한때 그랬지. 내 안으로 들어가는 데 수년을 보냈어. 그리고 거기서 침묵을 맛보기도 했지. 그런데 어느 날 내 상상인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찾아오셨네. 그리고는 '와서 나를 따르라'는 단순한 말씀을 하셨지. 나는 나갔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
제자는 어리벙벙했다. "하지만 침묵은...?"
"나는 '위대한 침묵'을 발견했네. 그리고 소음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홀로 있는 시간, 주님의 치유 안에서 쉬는 시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모든 말씀에 온 맘 다해 경청하는 침묵의 시간, 이것이 우리의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이다. 바쁜 일정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일 15분 내지 20분만 들어도 좋다. 짧지만 그것은 삶을 바꾸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은 세상을 향한 그분의 마음을 우리와 나누실 수 있다.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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