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묵 상/새벽 묵상

이때야 말로 (요한복음 18:10-11)

로뎀의 엘리야 2012. 4. 20. 09:21

 

     

    이때야 말로 (요한복음 18:10-11)

     

    일에는 소위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기 적절하게 해야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법입니다.

    예를 들어 증권에 투자를 할 때에는 사고 팔 때가 적절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 벌겠다고 나섰다가 큰 손해를 보고 낭패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또 집을 사고 땅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투기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되지만, 집을 사고 땅을 살 때도

    시기가 적절하면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손해 안보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기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이 어떤 때냐?’를 잘 알고 난 다음 적절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실수가 없습니다.

    ◉ 본문에는 예수님이 잡히실 위기에 처하셨을 때

    그 위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두 가지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는 베드로의 이해요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이해인데,

    이 모습을 통해서 신앙인의 위기를

    이해하는 바람직한 모습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위기는 「무조건 벗어나고 볼 때」였습니다.

    그래서 앞 뒤 안 가리고 칼을 뽑아 휘두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얼마나 무모한 것입니까?

    3절에 의하면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의 수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이라고 그랬습니다.

    ‘군대’에 해당하는 어휘는 「스파이라」입니다.

    이 말은 세 가지로 쓰였는데, 보통 600명 정도 되는 ‘보병’을 뜻했고,

    경우에 따라 1000명이나 되는 ‘예비적인 보병대’나 200명 정도 되는

    ‘파견대’에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을 잡으러 온 수는 ‘하속들’이라고

    불리고 있는 「성전 수비대」까지 합치면 적게 잡아

    이백명 이상이요 많게는 천명 이상입니다.

    그리고 이에 비해 제자들의 수는 11명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모한 짓입니까?

    사람이 위기 탈출에 급급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무모하게 행동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기게 됩니다.

    아마 예수님이 말리지 않았다면

    베드로는 이 날 겟세마네 동산에 뼈를 묻고 말았을 것입니다.

    급할수록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천천히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 순간은 바로

    「참을 때요 하나님의 뜻을 이룰 다시없는 찬스」였습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11절) 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누가복음에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눅22:51절上)

    그리므로 누가복음의 말씀과

    오늘 본문의 말씀을 연결해서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그리고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위기란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괴로운 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위기란 참고 또 참아서 온전히 인내할 때요,

    이 때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만천하에 나타낼 때입니다.

    그러므로 위기 속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까?

    이 위기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위기 속에는 감춰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뜻도 없이 단지 고난을 주기 위해 위기를 주시지 않습니다.

    설사 내 죄로 인해 벌을 주실 때에도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뜻이 담겨 있거늘,

    하물며 내 죄로 인해 초래된 위기가 아닐 때에야 거기에

    나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 있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상황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필수적인 관문이었습니다.

    반드시 그 문을 통과해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또 영광을 돌릴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인생의 위기가 있다면,

    그 위기 역시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황하거나 경솔하게 행동하지 마십시오.

    막막해하지도 마십시오. 길이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보다는 예수님처럼 믿음으로 가만히

    내가 처해진 상황을 참고 바라보면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그 뜻대로 살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 아 멘 -

     

              = 2012년 4월 20일 새벽기도회 설교 중에서 =

     

    x-text/html; charset=iso-8859-1" width=280 src=http://www.jesusletter.kr/MR/a02.mp3 x-x-allowscriptaccess="sameDomain" allowNetworking="internal">
    MR:기도 1집 : 예수나를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