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묵 상/하늘 설교 요약

합당한 섬김, 네 몸을 드리라

로뎀의 엘리야 2020. 7. 26. 07:46

성경 / 로마서 12:1

제목 / 합당한 섬김, 네 몸을 드리라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님의 예배는 하나님께 집중된 것 =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바울의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섬김에 집중된 것 즉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영적 예배가 실은 합당한 섬김이라는 것 입니다.

디모데후서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디모데전서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우리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구원은 이론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이해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마음의 확신으로 변하고, 그 다음 자연스럽게 그 확신된 믿음이 실제 생활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교리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구원을 교리로 이해하기 때문에 능력이 없습니다. 삶으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형식에 그치게 됩니다.

그러면 구원을 삶으로 이해한다고 할 때 구원받은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구원받은 대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면 대체 그 구원받은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이에 대한 답을 바울은 본문에서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 몸을 제사, 즉 예배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이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가 되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하는 영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 예배는 자기의 전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치러지는 어떤 의식이나 행사만을 특정하게 예배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여러분 인생 전부여야 합니다.

진정한 영적 예배는 하나님께 자신의 몸과 그 몸으로 매일 행하는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가 예배의 이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진행되는 장엄한 의식만을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의 모습과 삶의 모습이 동떨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영적 예배는 바로 여러분의 인생 그 자체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몸으로 이루어 나가는 일상 생활이 그대로 예배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터에서 일할 때 맡은 일을 소홀히 할 수 없고, 하다못해 시장에서 물건 하나를 살 때에도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를 해도 거기에서 성도의 품격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가볍게 생각합니까?

왜 세상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쉽게 비난의 화살을 돌립니까? 왜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존중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구별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나 자기들이나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원인이 대체 무엇입니까?

예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예배가 부족합니다. 삶을 예배로 드리려는 마음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충 살고 적당히 살고 타협하며 삽니다. 그러니까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도 자신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리스도인을 존중할 마음이 생기겠으며 그리스도인이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인정해 주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주일날 예배를 드리려고 교회로 향하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때 여러분들은 무어라고 대답합니까? ‘, 교회에 예배드리러 갑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날이 바뀌어 평일에 볼 일 보러 나섰는데 역시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합니까? ‘어디 어디에 무슨 볼일로 간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성도는 나는 일터에, 시장에, 친구 집에 예배하러 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육점에 고기 한 근 사러 가고 부식가게에 배추 한 포기 파 한 단 사러 가도 나는 정육점에, 부식가게에 하나님을 예배하러 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워도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외치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자의 삶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 몸으로 하는 일상 생활 전부를 하나님 앞에 예배로서 살아 내는 것입니다. 그런 정신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이요 여러분이 살아야 하는 인생입니다.

예배는 내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도 좋지만(절대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관심의 중심이 여전히 우리 자신입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하나님이 구심점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어느 정도의 자율이 여전히 우리에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면 그야 말로 우리가 그 안에푹 잠깁니다.

그분은 만유 안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히시며 만유 위에 계십니다.

모든 생명은 한분 하나님을 통해 유지됩니다.

삶은 하나님 중심에서 흘러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범위를 좁혀서 내 몸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가 모여서 너희가 되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예배의 삶을 살면 우리 모두가 예배의 삶을 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나를 통해서 누군가가 예수님을 알고 위로 받고 구원받고 축복받고 멈추지 말고 계속 예배자의 삶을 삽시다.

구원이 여러분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