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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의 자리바꿈 ◈

로뎀의 엘리야 2007. 2. 3. 17:10

 

◈ 주인공의 자리바꿈 ◈
 
살아가면서 때때로 자신을 돌보면서 되묻는 질문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주인공으로 사느냐는 것이다. 살다보면 남의 생활이 좋아 보이고, 닮고 싶어서 살며시 빌려오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또는 탈을 쓰듯 변장한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아니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신도 모르게 휩쓸려 살아가는지. 꼭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맞게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조연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삶은 오히려 조연이 더욱 값지게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주인공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판단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남에게 미루어서도 안 되며, 주변을 핑계의 이유로 끌어 들이지 말아야 한다.

 

요즘뿐만 아닐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주인공의 자리가 자주 바뀌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미 이천년 전에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이다.
성령이 이끄는 삶이 더 주인공 같은데.... 삭개오 이야기를 하면서 삭개오를 아직도 주인공으로 전하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 예수님이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밥 한 술 얻어먹는 예수로 전락을 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진리의 자리에서 주인공은 변할 수 없다.
이단이라는 것은 바로 끝이 다르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주인공을 바로 인식하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주인공처럼 되기 때문이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자주 말한다. 바로 여러분이 주인입니다. 그러하고서는 당선이 되면 주인공은 혼자인 것처럼 한다. 그래서 문제가 일어난다, 모든 계약에도 주인공이 있다. 처음에는 계약대로 이행하다가 나중에는 이미 돈을 다 받았으니 내 마음대로 한다고 한다면 주인공이 바뀌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바로 알자는 것이다. 내 삶에 있어서 주인공은 바로 나다. 당당하게 주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좀 부족함이 있더라도 주인공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공연장에서는 나의 위치를 제대로 구분하여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맨 처음 사람 아담도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았던 자가 아닌가? 역사는 반복 되어 가면서 수많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가롯 유다처럼 주인공이 되려다가 자기의 삶조차 간수 하지 못한 패배자로 역사에서 사라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안다. 그러기에 같은 일을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말없이 빈민들을 섬기던 데레사 수녀가 당시대의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속에서 당당한 주인공으로 살되 역사의 틈 바퀴 속에서는 섬기는 자가 곧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빌려 오거나 모방하거나 감추인 체로 살아가지 말고 부족하고 흠이 있는 상태라도 당당히 쓰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느헤미야라는 사람은 고향의 어려운 형편을 듣고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구체적으로 고향을 도울 준비를 해왔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벽을 쌓는 일에 온 힘을 다 기우린다. 처음부터 방해하던 도비야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다 지어진 성벽에 방을 만들고 먼저 들어가 주인행세를 한 것이다. 수고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고, 남의 자리를 쳐다보는 악한 습성은 없어야 한다.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진실함이 있다면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알아 보게되고 그는 그 시대에 필요한 인물로 주인공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남을 비방하고, 비판하면서 경쟁에서 이기려는 자세보다 섬기기를 좋아함으로 주인공의 자리에 서 있는 성도들이 보고 싶고 그립다.
내 자리를 기꺼이 내어 주어도 역시 주인공이 되는 신비함이 있는 그런 분들이 바로 자신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