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믿음도 좋고, 성격도 좋을순 없을까?.. ◈ 초대교회는.. 일군(리더십)을 세울때의 기준이.. '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이었다. 나는 청년시절 이 말씀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골머리를 썩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알것 같다. 왜? 굳이.. 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을 세우라고 하셨는지.. 나는 인생을 얼마살지 않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접촉해 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성향이다. 혹자는... 영적으로는 신령(?)한데 성격이 모나고.. 혹자는... 성격은 나무랄데 없는데,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다. 나는 미숙한 시절에 생각하기를.. 성령충만하면, 하루 아침에 성자가 되고 천사가 되는 줄로, 확실하게 믿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더디 깨달았다. '성령충만과 착함'은 충분히 별개일수 있다는 말이다. 착하긴 한데 영을 모를수 있고 영은 밝은데.. 착하지 않을수 있다. 다시말하자면.. 물은 기막힌 약수인데 그 물을 담을 그릇은 더러울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물은.. 성령충만을 말하고, 그릇은 성격을 의미한다. 이 두가지의 조화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평생 과제인 동시에.. 주님의 애절한 소원일 것이다. 우리 주변에 보면 = 나를 포함하여 믿음 좋고, 충성되고, 헌신적이고, 기도 많이하는데.. 성격이 그만, 개차반(?)인 사람들이 상당히 많음을 알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너무 많이 보았고 알고 있다. 그래서 사도들은.. 교회의 일군을 세울때, '착하고 성령이 충만한자'라고 못밖았을 것이다. 성격을 좋게 소유하고 태어났으면 50% 축복을 받고 출발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성격이 모나고 거시기(?)하면 허구 한날, 연단 받고 두들겨 맞느라 아무것도 못한다. 야곱은, 성령충만한 사람이엇다. 영적 사모함도 충만했고, 축복에 대한 야망도 득심했으며 꿈속에서 하늘이 열릴 정도로, 신령했다. 그러나 그의 성격이나 기질은, 대단히 모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야곱은 평생을 회고하며, '나는 험악한 삶을 살았노라' 고백하고 있다. 은혜는 받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다. 그런데 성격이 모나면(혈기,교만,욕심,까탈스럼,변덕스럼,무례함,무정함,수다,조급함,깐깐함, 받은 은혜를, 한 순간에 쏟게 된다. 우리는 신령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들에게, 심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럴때 마다, 우리는 속으로 읖조린다. '은혜 받으면 뭐 하나?성질을 부리지 말아야지..' '기도하면 뭐 하나? 마음이 너그러워 야지...' 이런 사람은, 자기 공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이 외면하기 일수다. 함께 하다가, 상처받기 십상이기에 그렇다. 목사도, 마찬가지이다. 설교가 좀 부족해도 영력이 좀 떨어져도 실력이 좀 안되어도 착한 목사가, 좋다. 설교를, 아무리 잘하면 뭐하나? 이래 저래.. 양들과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와 실망만 안겨 주는 것을! 가까운 지인들이나 가족들은, 성격을 보고 존경하지 성령충만을 보고 감동받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고자, 절대적인 은총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릇도 좋고, 물맛도 괜찮은 성도가 귀하기에 그렇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 '성격은 안 변한다' '성격은 하나님도 어쩔수 없다'는 말은, 마귀가 속이는 것이다. 희귀하여 그렇지.. 더러 더러, 확~ 변한 사람들이 있다. 어찌, 가능할까? '말씀하나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역사하는 힘이 강하다. 말씀은, 우리의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능히 쪼갠다. 그 말씀이 내 안에 머물며 역사하기만 하면, 변화 안될 사람있을까? 도덕적이고 식상한 말씀을, 귀로 듣기에 변화가 없지 실제로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 아멘하기만 하면 그 현장은 변화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말씀을 듣는가?'라고 하는 문제는, 우리의 생존만큼이나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만만히 보지 마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이면 내가 변하고 너가 변하기에, 능히 충분하며 족한줄로 믿어야 할지니라. 송충이는 솔잎으로 먹어야 살듯이, 믿음의 사람들은 제대로된 말씀을 을때 변화는 시작된다. 못 되고, 모난 성격과, 기질을 만지시면 때로는 순식간에,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조금씩 변하고 바뀐다. 옛말에, '백로야 까마귀 노는데 가지마라. 너 또한 까매질까 하노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로이다. 그러므로, 성격이 까마귀 같은 지체들을, 경계해야 한다. 스데반과 빌립과 같이 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나 또한 착한 목사, 성격좋은 사람 그런일에 욕심이 난다.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주의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한 가지 사실은, 착하기만 하고 성령충만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착함이 의가 되어 성령을 갈구하는 일(성화)에 아주 인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으로 난 것은 다 육일뿐이다. 아무리 자연 인간이 너그럽고 천사같을 지라도.. 영에서 근원되지 않은, 착함과 매력으로 넘치는 성격은 육일뿐이며.. 그것이, 자만이 되어 하나님께로 깊이 들어가는 일에, 방해만 있을 뿐이다. 신앙도 좋고... 성격도 좋은, 그런 사람이기를 갈망하자. 우리의 할일은... 그저 날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 뿐이다. 이제는 '믿음 좋다, 실력있다, 신령하다'라는 말 보다는 착하다는 말을 들음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되며, 착하게 삶이.. 곧 주님의 기쁨되는 삶이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취게 하여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하루를 살더라도,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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