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묵 상/새벽 묵상

착각은 자유 (요한복음 16:1-4)

로뎀의 엘리야 2012. 3. 20. 07:14

 

     

    착각은 자유 (요한복음 16:1-4)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신분상으로는 「바리새인」이었고(행23:6절), 「공회원」이었으며(행26:10절),

    지식적으로는 당대 최고의 율법교사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한 교훈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행22:3절)

    배운 것으로 보나, 신분으로 보나,

    어느 모로 보아도 흠잡을 데 없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그의 변화 받기 이전의 삶을 성경은 이렇게 전해줍니다.

    바울 자신의 고백입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행 26:9-12절)

    말은 길지만, 그러나 한마디로

    「예수 믿기 이전까지 자신은 착각 속에 살아왔다」는 고백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인 줄 착각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해줍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2-3절)

    주님이 어떤 분이신 지,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알지 못하기에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속된 말로 「무식(無識)이 용감(勇敢)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길길이 날뛰는 것을

    비꼬는 말인데, 이런 용감성을 가리켜서

    「만용」이라고도 하고 「객기」라고도 합니다.

    사울은 바울로 변화되기 이전에는 객기를 부리며 살았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잡아죽이는데 증인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나깨나 ‘어떻게 해야 예수 믿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핍박할까?’를

    골똘히 생각하며 살았던 사울입니다.

    그의 핍박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성경은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행8:3절)

    피묻은 기록을 남기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두려움 가운데서 듣고

    난 다음부터는 사울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행9:22절)

    언제든지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법입니다.

    예수가 누구신지,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알면

    그를 따르는 성도들을 핍박할 수가 없습니다.

    왜?

    사울처럼 자신도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핍박이 있을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를 핍박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러하셨고,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 그러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행7:60절) 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염려 속에 늘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남겨 놓고 가는 제자들이 염려되어

    두 번씩이나 비슷한 말씀으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1절)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4절上)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까?

    그들에게는 기껏 해봐야 육신을 지켜주는 사람들밖에는 없습니다.

    착각 속에 빠져 사는 가여운 사람들입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그 결과를 피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핍박을 받을 때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예수님께서 우리를 염려하셔서 미리 말씀해 주신

    핍박을 예견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이겨야 합니다.

    ∙ 또 우리를 핍박하는 이유가 예수님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핍박을 기대하며 삽시다. 핍박을 즐기십시다.

    핍박은 예수를 올바로 믿는 증거요 이웃을 사랑하고

    기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 아 멘 -

     

               = 2012년 3월 20일 새벽기도회 설교중에서 =

     


    MR:강호용마림바연주1집 : 주와함께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