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묵 상/하늘 설교 요약

지킬 것이 있는 삶은 강력하다

로뎀의 엘리야 2020. 10. 4. 07:12

성경 / 고린도전서 16:13-14

제목 / 지킬 것이 있는 삶은 강력하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3)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14).

 

본문 말씀은 신앙이란 강건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쪽의 극단을 강조하는 예가 없습니다.

신앙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조화를 이루기 위한 조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지킬 것이 있는 삶

요즘 어렵다고 합니다. 요즘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연세 드신 권세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전쟁이 뭔지 알아?". 전쟁은 피도 눈물도 없고, 가족이 생이별하는 등 처참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전쟁도 극복했는데 코로나, 경제적 위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지킬 것이 없고, 붙들 것이 없는 인생은 아무리 고난을 당할지라도 아무 유익 없는 개고생하게 됩니다.

반대로, 사도바울처럼 지킬 것이 있는 인생은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있음을 알고도 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명은 곧 지킬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은 평탄함과 험난함이 아니라 지킬 것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고난만큼 풍성한 유익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을 때 시편을 지었습니다.

시편 137: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힘들어도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부를 노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킬 가치가 있었고, 붙들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가치 있는 가문은 지킬 명예가 있는 가문이요. 지킬 믿음이 있는 가문입니다.

순교자 배출한 가문이 하나의 예일 것입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 19 위기에 경제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19와 경기 회복이 되는 것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습니다.

취업이 문이 막힌 사람에게 시험에 붙고, 좋은 직장 얻는 것으로 문제 해결이 다 되는 것입니까.

병든 자의 소원은 건강 회복입니다. 그러면, 건강 회복만으로 다 되지 않습니다.

경기가 좋아지고, 길이 열리고, 건강해지는 것만을 우리의 목표로 삼는다면 마지막은 헛됨과 무너짐 밖에 없습니다.

시시 때때로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것은 다 버린다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지킬 가치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지킬 것을 붙들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고된 일이 아니라 헛된 일입니다.

내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믿음을 붙들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고난을 겪더라도 의미가 있고 가치를 발견하면 넘어지지 않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1, 12장을 보면 바울이 육체의 가시와 그 많은 환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지킬 것이 있는 인생은 환경 때문에 위축되지 않습니다.

외형적으로 다 갖추었는데 오그라드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는 새인데 새 같지 않은 새가 두 종류 있습니다.

하나는 닭이고, 또 하나는 타조입니다.

타조는 쉽게 잡을 수 있답니다. 자동차 지프로 지칠 때까지 따라다니면 고개만 쳐 박고 숨을 때 밧줄로 잡으면 된다고 합니다.

우리도 타조 같은 인생이 많습니다.

외형적으로 멀쩡해 보이는데 마지막에는 눈 가리는 인생입니다.

마귀의 최고의 위협은 죽인다입니다.

안 망하고, 안 쫓겨 날려고, 안 죽을라고 배신하고 타협하며 안정 추구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이러한 인생은 위축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를 보십시요.

풀무풀에서 죽었습니까.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죽었습니까.

잊지 마십시요.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하나님이 아니다하면 가는 것이고,

아무리 죽을 위협에 놓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건져주시면 살 수 있습니다.

악한 마귀는 상황을 통하여 위축 시키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상황은 매일 변화되는 것입니다. 상황에 뿌리를 둔 사람은 허망합니다. 항상 불안합니다.

좋아도 두려움에 빠져있고, 나쁘면 나빠서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생명으로 역사하는 사람의 특징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뛰어 넘어 언제나 승리하게 됩니다.

시편 57편을 보십시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아둘람 굴에 도망칠 때 상황입니다.

시편 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그는 상황을 이야기 하지 아니하고 자신 내면의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믿음의 고백 이후에 내 영광아 깰지어다’.

, 내 속에 있는 가능성, 하나님의 형상이 다 드러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인간의 역사를 바꿀 수 있고,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대의 새벽을 깨운다는 것입니다. 자기 내면의 영광이 깨어난 사람이 시대의 어두움을 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건이 아닙니다. 가슴 속의 하나님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게으름의 처방은 부지런하라라는 캠페인이 아니라 당신의 안에 있는 불꽃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슴 속의 불꽃이 무엇입니까. 사명이요. 지킬 것입니다. 불꽃이 있는 인생은 좌절하고, 낙오되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 예수님이 아니면 여기가 아니면 않된다고, 가냘픈 빛 하나 붙잡고자 예배의 자리에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답답하고 갈 길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이 빛을 보는 그 순간에 일어 설수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빛은 지킬 것입니다.

결코 나는 무너지지 않으리 기필코 일어서리 해내겠습니다. 능력을 주세요 간구하는 새벽이 될수 있길 축복합니다.

"어두운 가운데 살아도 내가 어둡지 아니한 것은 내 마음에 빛이 있음이라 내 마음에 빛 된 예수 그리스도 그가 내 안에 계시니라"

능력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영광의 빛을 발견해야 합니다.

2. 부드러움

고린도전서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사랑을 할 때 부드러워집니다.

여자들이 남자친구와 대화할 때 목소리가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과 은혜를 알면 부드러워집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얻어야 한다고 하니까 피곤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의 인생은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극복하고 깨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1만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1달란트가 38kg 금이니까 5,000개의 금덩이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것입니다. 수십조의 돈으로 개인이 갚을 수 없는 돈입니다.

갚을 날을 연기해 달라고 합니다. (26)

이 사람은 불가능을 인식하지 못하는 착각이 있었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1만달란트 빚진 자의 해결은 주인이 탕감해 주는 일 밖에 없습니다.

탕감 받은 사람은 감사히 여기고 기뻐해야 하는데 꼭 갚고야 말꺼야. 이렇게는 못살아하는 자세는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은혜로 해결 받은 삶의 문제들을 다 갚을 수 없지만 누리며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변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은혜로 깨달은 후에는 용서가 가능한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나도 탕감 받았는데 탕감 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고민하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1만달란트 탕감은 받았지만 용서 받은 체험이 없었기에 1백데나리온 (100일정도 품삯)

, 천만원정도 갚지 못한 자를 감옥에 넣게 됩니다.

탕감 받은 감격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라도 털어보니까 먼지가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름대로 노력했던 사람이지만 인간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공동체가 회개해야 하는 문제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과 은혜를 모르면 행위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세상의 특징은 행위중심입니다.

한국교회를 봐도 빨간조끼 입고 구제함에 초점을 맞추고, 몇 명 모이는지, 헌금이 얼마인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공부도 현란해져서 대학 교육은 다 받고, 취직 안 되는 사람은 대학원가고, 한 교회에 박사가 반인 경우가 있을 정도로 박사가 많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놀이동산이나 게임기를 보십시요. 노는 것도 지금은 현란해졌습니다.

초대교회 예배는 현란함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은혜로 부터 나오는 단순한 행동들이 찬양과 기도와 말씀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진짜 사랑하고, 은혜를 알면 현란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순해 지는 것입니다. 그 안에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부드러움 가운데 교류하게 되고, 의도치 않았지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

시시 때때로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것은 다 버린다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지킬 가치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지킬 것을 붙들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내 안에 불을 발견하고 지킬 것을 지키기 위하여 일어나 깨어 기도하자.

자신을 위해, 가정을 위해, 자녀를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