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아래 이야기/로뎀나무 아래

◈ 로뎀 나무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

로뎀의 엘리야 2007. 1. 7. 21:03

 

◈ 로뎀 나무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


몇 일전 로뎀나무 아래로 목사님 한 분이 찾아 오셨다. 지금까지 교회를 개척하고 오래 섬겨 오던 사역지를 아주 오래전에 떠나 선교단체에서 아주 많은 사역을 그리고 목회자들을 돕는 사역을 감당하신던 목사님이시다.
그러한 많은 직임과 사역이 있었는데 지난 9개월 전에 사역을 내려놓고 기도하고 다시 교회를 개척하려고 오래도록 기도하신 분이시다.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고 돌아가셨다.

 
살다보면 그냥, 나락으로 곤두박질 할때가 있다.
모든 것을 접어 두고,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이 싫고, 일이 버거울 때가 있다.


옛날을 그리워 하며, 하늘을 보아도 꽃을 만져도 우울할 때가 있다.
회한과 통절한 마음이, 주야로 음식이 될 때가 있다.
하나님의 '하'자만, 생각해도 마음이 천근일 때가 있다.
움켜 쥐었던 모든 것들을 반납하고, 날개가 있다면 날고 싶을 정도로 하루가 천년인 때가 있다.
이런 무력증 내지는 피로증후군에 빠지면,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하기도 한다.
아무도, 무엇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만 바랄뿐이다.


엘리야가 그러했듯이, 차라리 죽는것이 낫겠다는 생각뿐이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더우기 하나님이, 귀히 사용하시는 사역자들에게, 이런 가혹한 시련을, 무엇 때문에 허락하시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련이라면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 누구도 안되며, 그 무엇으로도 안된다.
하나님은 종종 하나님의 사람들을 로뎀나무 아래서 만나기를 원하신다.
로뎀나무 밑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일 보다, 만남을 더 좋아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대로 갈멜산이 아닌, 로뎀나무 아래서 우리를 보고 싶어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갈멜산에 머물기를 바란다.
그것에서 영광받으며, 인기를 누리며 안주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벨을 통하여, 우리를 황급히 쫓아내신다.
우리가 머물곳은, 로뎀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우리를 로뎀나무 아래로 몰아 부치시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갈멜산의 영광이(사역)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며,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할지라도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에게 날마다, 갈멜산의 영광과 기적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며, 교만에 빠져 산신령 되고 말 것이다.
주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심부름꾼일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자랑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은혜를 알고 우리를 낮추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남아 있는, 모든 영성을 바닥나게 하신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게도 하신다.
그리고 경제 압박도 허락하신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깨닫는다.
"아~ 갈멜산의 영광은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며 역사였구나.
나는 주님이 능력을 한 방울이라도, 안 주시면 아무것도 할수가 없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이런 훈련을 시키신다.
오병이어 기적후에,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기억하자.
여리고성 함락후에, 아이성의 실패를 기억하자.
홍해를 건넌후에, 마라의 쓴물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영광후에,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다듬어 가시고 세워가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쁨은 하늘에서 불을 내린 사실이 아니라 엘리야 자신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날마다 승리하고 충만하면, 우리가 하나님 된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교만은, 바벨탑이 될 것이다.


목회자가 매일 설교가 은혜롭다면, 그 설교자는 금방 자기 교만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씩 죽을 쑤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원하는 일을 막으시고 못하게 하시고 원치 않는 일을 하게 하시고, 원치 않는 사람과 만나게 하시기도 하신다.
그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를 낮추시기 위함이며, 은혜의 원천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베드로의 겸손이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잡아 일으키니 벌떡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사람들은 베드로를 주목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의 주목을 예수님에게로 돌렸다.
"왜
나를 바라보느냐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이 이 사람을 일으켰느니라"
다시 말하면 주님이 하신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 가지 있다면 죄 짓는 것이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영광 받으실 분은 오직 그분이시다.


아브라함이 80세 정도에 아이를 낳았다면, 내가 아이를 낳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100세에 낳으니,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하지 않던가?
사람은 누구나 동일하다.
갈멜산에서는, 겸손을 배울수 없다.
그곳에서는 철이 들수도 없다.
나이가 드는 것은 떡국 먹으면 되지만, 철이 드는 곳은 로뎀나무 아래서이다.
은혜를 받는 곳은 교회이지만, 은혜를 깨닫는 곳은 로뎀나무아래이다.
일이, 하나님은 아니다.
내 일을 하면서도, 주의 일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역이, 주님은 아니다.
전 세계를 누비며 주의 일에 힘쓰더라도, 주님과의 관계가 엉터리일수도 있다는데 함정이 있다.
그뿐인가?
일하느라 주님 잊어버린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일은 은사와 사명으로 할수 있다.
그러나 회복과 충만과 평안은 관계를 통하여 주어지는 선물이다.


우리는 갈멜산에서, 불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로뎀나무 아래서 형성되는 것이다.
일을 못하고 서투른 것은, 죄가 아닐수 있지만
관계가 깨어진 것은, 절대 절명의 시간이며 최대의 영적 위기이다.
그것이 내면에서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영적 피로 증후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