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묵 상/요한복음 장별

생명의 떡

로뎀의 엘리야 2006. 4. 25. 06:13

성경/ 요한 복음 6장
제목/ 생명의 떡

 

 

사람이 살아가는데 세 가지의 필수요소가 있습니다. 공기와 물과 음식입니다. 이 세 가지가 사람의 생명에 필수적인 것처럼 요한복음에서도 참으로 기막히게 인간의 영생과 구원을 이 세 가지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 중에 3장에서는 중생케하는 성령을 공기인 바람에 비유했습니다.
4장에서는 물에 대해서, 수가성 여인에게 주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5장에서는 그 구원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고 오늘 본문 6장에서는 예수님 당신이 바로 떡이라고, '참 떡'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육신은 밥을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결국은 죽습니다. 안 먹어도 죽지만 죽지 않으려고 열심히 먹어도 죽습니다. 그러니 인생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그래서 밥을 먹어도 죽는 우리를 살게 하시려고 죽지 않는 약을 갖고 오셨습니다. 그 약이 바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라는 새로운 양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아쉬워하셨고 안타까워하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배고픔만 해결해주는 분으로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와 구원의 문제를 해결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 받기만을 원했습니다.
이게 뭡니까? 불신앙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보다 육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육신의 문제를 해결할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만나의 기적이 다시 일어나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고, 배고플 때는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셨던 것처럼, 이들도 로마에서 해방시키고 배고픈 육신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아로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기대를 갖고 있던 이들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자 모세와 같은 그 메시아임을 확신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너무나도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너무나도 커다란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다만 썩어 부패해질 빵과 고기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음식을 기적적으로 채우시는 이분이 누구신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적과 비유들을 통하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걷는 이적을 통하여 당신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셨습니다.
풍랑을 만나 어려움을 겪은 제자들은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또 한번 놀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며 당신의 정체를 밝히셨습니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주님은 이제까지 왔다간 선지자나 왕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육신적인 동기로 주님을 따라 다니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26절). 그리고 주님은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27절).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하여 무엇이 하나님의 일인가를 알려주셨습니다. 29절에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우리 주님을 믿는 일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입니다.
영혼을 위해서는 아무런 투자나 관심도 없고 오로지 육신과 현실적인 일에만 관심을 갖는 세속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떡으로 내려오신 주님은 하나님이 우리 에게 주신 생명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인생의 문제만을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병을 고쳐주고, 사업이 잘되게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주시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좋아하는 그들을 향하여 이 떡은 평상시 먹는 음식과 다를 바 없고 과거에 조상들이 먹었던 그 만나와 다르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시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주셨던 만나나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었던 떡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한끼의 배고픔만 해결해줄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마4:4).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주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67) 그런데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알았삽나이다"(68).
오병이어의 기적은 떡이 생명이 아니라 그 떡을 만드신 주님이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것을 이제 조금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도의 참된 양식은 밥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모든 삶을 예수님께 의탁하는 삶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고 마시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오늘도 생명이요, 참된 양식이 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양식걱정 없이 항상 만족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