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묵 상/요한복음 장별

진리에 목마른 자

로뎀의 엘리야 2006. 4. 27. 06:09

성경/ 요한 복음 7장
제목/ 진리에 목마른 자

 

 

시편기자는 시편 42편에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1절).
어거스틴도 그의 고백록에서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찾기까지 참된 안식이 없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이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만족함이 없으며, 채워지지 못했었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인생의 참된 행복과 기쁨과 평안함을 맛보았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행복하고 기쁘고 평안함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고 기쁘고 평안함을 누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비전과 꿈이 하늘에 있는 사람입니다.
꿈과 소망이 이 땅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하거나 평안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그것 때문에 평안하거나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물을 실컷 먹었다고 갈증이 안 납니까? 그것처럼 이 세상의 것은 먹어도 먹어도 갈증만 느낄 뿐입니다.
13절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는 했지만 드러내놓고 믿지는 못했습니다.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물질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려움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으려면 육신에 속한 것이 손해를 본다해도 불안해하지 않고 하늘나라에 있는 그 큰 소망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둘 때 평안함이 있고 행복합니다. 그러면 어려워도 자기의 소망을 따라 행동할 수 있고 힘들어도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1절, 11절, 13절에 모면 가는 곳곳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주님의 사역을 계속하셨습니다. 5절에 보면 그 형제들까지도 믿지 않았지만 그것이 방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세상일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하지말고 하나님에게서 참된 만족과 기쁨을 찾기를 바랍니다.

 

 

둘째, 말씀대로 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7절에,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교훈을 알려면 지적인 것에 있지 않고 행함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영적인 지식을 얻는 방법은 지적인 능력이나 명석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불순종하게 된 것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외모로 판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일한다고 죄인으로 정죄하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것처럼 병자를 고치는 것은 합법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24). 외모로 판단하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면 성경공부를 많이 하고 말씀을 들어도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고 지적인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셔서 주님을 깊이 아는 온전한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세상 것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만족의 기준은 세상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으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갈증을 느낄 때 주님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갈증을 느끼지 못하면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세상 것에서 만족을 누리고 사는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세상 것에서 실망하고, 죄절하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주님 앞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37절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는데 '마시라'는 말씀은 39절에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막절 마지막 날에 백성들을 생수의 강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초막절은 추수에 대한 감사와 함께 비가 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특히 초막절에 행하는 예식 중 중요한 의식은 물로 행하는 의식입니다. 물을 붓는 일은 특별한 의미와 상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과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에 감사할 뿐 아니라 약속된 성령의 강림을 간구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그들 곁에 있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수 백년 동안 드려왔던 초막절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시며 사람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초막절 의식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으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배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가 왜 중요한지를 알고 계십니까? 우리의 신앙의 중심과 예배의 중심을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그래야 본질이 변하지 않고 내용 있는 충실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의미를 알고 있어도 머리로만 알고 있으면 그것도 열매 없는 쭉정이가 되어서 갈증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잘 알고 있었고, 또 성경에 계시된 그 메시아가 지금 그들 앞에 있음에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알고 있는 것을 과감하게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변호했습니다. 51절에,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미리 판결하느냐"고 유대인들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갈증을 갖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니고데모처럼 믿음이 자라게 될 것입니다.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일에 갈증을 갖지 마시고 주님의 말씀에 갈급함을 갖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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