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김의 리더십 ◈
몇 일전에 나는 허리 디스크로, 여러해 동안 고생을 하시던 사모님 병문안을 하면서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곤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사모님은 수술을 하고 이제 쉬고 계신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다른 분하고 다르게 위에 계신 분이 도와 주시는 것 같다며 빠른 치료와 회복에 놀란다고 한다.
나도 몇일 전에 아픈 허리로 인하여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의 모든 관심이 나의 허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몇번 디스크냐?' '어떻게 발병했느냐?'에 말이다.
물론, 의사로서 당연한 의무이겠지만 나는 그때 '내가 허리 아픔으로 인하여 얼마나 속상한지', '디스크로 인하여 얼마나 삶에 장애가 되고 얼마나, 고통스런운지'를 묻는, 의사는 거의 없다.
어디가 아픈지를 묻고, 거기에 따른 처방전을 내릴 뿐이었다.
물론 그것이, 환자에 대한.. 최고의 의료 서비스일수 있다.
그러나, 환부만 보지 않고 환자의 전부(마음, 기분, 고통)를, 살피는(공감적으로 이해하는) 의사야 말로, 명의일 것이다.
다시말해 '어디가 아프냐?'를 묻기전에, '얼마나 아프냐?'를 묻는 의사말이다.
부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의사말이다.
이런, 의사선생님들은 만나면, 괜실히 숙연해 진다.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마음이 따뜻해 진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는, 병을 잘 고치는 의사보다 내 마음(아픔)을 잘 알아 주는 의사가, 명의이다.
몇 일전에 이런 의사 선생님(일산 가정의학 권기범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의사 선생님과 전화 통화만 하여도 병이 낳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공감적 이해에 능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 보고 싶다. 환자와 의사와의 좋은 관계와 신뢰를 형성하며, 지내고 있는 것이 부럽다.
그런 의사분을 만나면, 아픔도 잊고 새 힘을 얻는다.
주사, 안 맞아도 다 낳은듯 하고 약을 먹지 않아도 완치된 듯, 마음이 유쾌 상쾌하다.
나도, 영혼을 치유하고 돌보는 목사로서 지금까지는, 참 좋은 목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곤 한다.
나는, 전공(신학과 해박한 성경지식)을 살려 '왜 기도하지 않느냐?''왜 믿음이 없느냐?' '왜 새벽을 깨우지 못하냐?'고 질책하고, 판단하는데는 선수(?)였지만 정작, 성도들이 '왜 기도를 못 하는지?'
그 마음이, '얼마나 속상할지'를, 통찰하고 공감하는데는 인색한 것이 회한과 자책으로 남는다.
나는 이런 면에서, 선한목자(명의)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환자나 성도들은 의사(목사)의 공감과 감정적 이해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선악은, 기막히게 구분하여, 설교하고 가르치지만, 정작, 그 가운데서 갈등하고 아파하는 마음을, 어루만지며 공감하는데는 둔감하지 않았나? 성찰하게 된다.
자녀들이, 무단으로 가출했다 돌아오면 보통 아버지들은, 돌아온 자녀를 향해, '왜 집을 나갔느냐? '야단을 치고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어머니는, 돌아온 아이를 향하여 '밥은 먹고 다녔냐?'
'어디 아픈데는 없냐?'라고, 아이의 아픔을 공감해 준다.
그래서, 성령을 모성에 비유하기도 한다.
성령은, 우리가 기도할수 없을 만큼 지쳐 있을때, 책망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우리 속에서 우리와 함께 아픔을 공감하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나를 향하여, 그리고 이웃을 향하여, 그리고 가족이나, 지인들을 향하여 그리고 교회와 목회자들을 향하여, 공감과 이해없이 '어디가 아프냐?'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온통 아픈 시대이다.
안 아픈 사람이 없고, 안 아픈 가정이 없고, 안 아픈 교회가 없고, 안 아픈 조직이 없다.
우리나라, 하루 자살숫자가 평균 33명이고, oecd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1위이다.
일년이면, 속초시 인구만큼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이다.
이런시대에는,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며 거기에는 어떤 처방이 좋은지를 소개해 주는 의사나 목사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힘드냐?' '얼마나 속상하냐?'고 보듬어 주고 공감해 주는, '섬김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이다.
예를들어..
개척교회를 향하여도, 마찬가지이다.
'몇명 모이느냐?'를 묻지 말고 '얼마나 힘이드냐'고 물으면 얼마나 힘이 나고, 격려가 되는지 모른다.
주님도, '몇명 모이느냐' 묻지 않으시는데, 사람들은 주님보다 더 앞선듯 하다.
또 아직, 미혼인 분들, 실직 당한 분들, 실업자들, 실패자들, 궁핍한자들, 환우들, 이혼한분들 실연당한 분들을 향하여도, '왜?냐고' 묻지 말고 그냥 함께 있어주며, 감정적 공감과 이해를 해 줌이, 우리의, '필연적 미션'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뭐가, 그리 힘드냐?' '다, 사는게 그렇지?' '너만 힘드냐?' 이렇게, 다그치시는 분이 아니라, '얼마나 힘드냐?'고 우리의 약함과 아픔을, 공감하시고 격려하고, 이해해 주시고 만져 주시는, 선한 목자이시다.
아이들이 길에서 넘어지면, 그냥 큰 소리로 운다.
그럴때, '왜 넘어졌느냐?' '눈을 똑 바로 뜨고 걸어라' '칠칠치 못하긴' 하면서, '뭘 잘했다고 울어, 뚝 그쳐' 그러면, 아이는 더 운다.
그럴때는 (이렇게 글를 쓰고 있는 나도 안되지만)
조용히 다가와, 다정한 목소리로 '얼마나 아프니?' '많이 아프겠다' 그러면, 아이는 거짖말 같이 뚝~ 그친다.
자기의 고통을, 감정적으로 공감해 주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졌을때(실수하고 죄짖고 연약하여 새벽기도를 빠지고..등) 조용히 다가와, '얼마나 힘드냐'고 하시며, 우리의 등뒤에서 여전히 우리를 격려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뜻은 완전해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삶이, Happy 한 것이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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