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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

로뎀의 엘리야 2007. 5. 21. 21:54

 

◈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 2007년 5월 21일

아주 작은 고난의 터널을 오늘도 지냈다. 정말 아주 작은 고난의 터널 ~~~ 그런데 내 마음에는 큰 태풍이 지나간 것 같다.  
인생이 삶을 살다보면, 말도 안되는 끔찍한 일(사건)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때 인생들은 이렇게 말하고 생각한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는가?"
이 말 속에는,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은 무얼 하고 계셨는가?"
"왜, 개입하지 않으셨나?"
"나를 이런 식으로 대우하시는가?" 이다.
하나님의 대한, 실망감 내지는 서운함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말도 안되는 일들을 당하게 하심으로 이렇게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하시는가? 라는 항변이다.
 
한국의 선량한 사람들 혹은 선교사님들이, 잔혹하게 순교 당할 때라든지 '하나님은, 왜 침묵만 하시고 계셨는가'에 우리는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악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게도 신실하고 경건하게 믿음을 지켜온 사람들에게 치욕적이고, 잔인한 고난들이, 무엇때문에 계속하여 엄습해 오는가?
분명히 하나님은,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새 사냥 군들에 올무에서와 극하나 염병에서 건져주시고,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말씀(약속)과, 현실은 너무도 다르다.
그래서 고난이 주는 고통보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더 힘들고 아플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셉을 보라.
요셉처럼, 말도 안되는 고난의 웅덩이에서, 오랜세월 동안 신음한 사람이 있었을까?
요셉의 현실은, 요셉이 꿈꾸고 기대하던  삶이 아니었다.
요셉은, 꿈과 정반대로 현실이 움직이고 있음에, 상당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우리 또한, 그럴 때가 많다.
기도하면 할수록, 응답과는 정반대로 이탈하고 엇나가는 현실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와같은 때엔, '과연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가?'
'기도가 정말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의 현실과 상황을 다 보고 알고 계셨다.
그리고, 요셉을 죄수에서 총리로 끌어 올리셨다.
어느 누가, 죄수로 있는 요셉이 홀연히 총리가 되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시고 당신을 계시하신다.
 
또, 모세를 보라.
모세는 정말, 광야에서 양이나 칠 그런 사람이 아니다.
모세 속에는, 유대인의 피가 끓고 있었고, 리더십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가만히 견디기가, 어려운 지경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모세의 달란트와 미션과는 너무나도, 무관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분명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도할 만한, 지도력과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를 양치기로, 40년을 방치해 두셨다.
이건, 말도 안되는 하나님의 결정이셨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실수 같이 보였을 것이다.
 
모세는,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허허벌판에서 무슨 기대를 할수 있었겠는가?
모세의 삶을 보면, 과연 하나님은 '모세를 위하여 무얼 하시고 계시는가?' 라는, 회의를 품게 된다.
지금 당장이라도, 모세를 불러내어 고통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스런 삶속에서, 구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고통 당함을 즐기시는 분이신가?'
이렇게, 한시가 급한때에 언제 쓰시려고, 모세를 4년도 아닌 40년씩이나, 리더십과 상관없어 보이는 양치기로, 허송세월을 보내게 하시는가?
'하나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가?'
'무엇을 얼마나 준비하시려 하는 것인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시면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하루를 천년같이 보내며, 애굽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왜 무엇 때문에 좋으신 하나님이, 나쁜 상황속에 그대로 당신의 자녀들을 방관, 방치해 두시는가?
빨리, 모세를 불러 능력을 주시고, 불을 주시고, 기름 부어 사용하시면, 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우리의 생각이며 판단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속이 터질 때가 많아 보인다.
악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 흐르도록 놔두시고 급속한 부요함과 성공으로 내달려 형통하게 하시고 의인들은 맨날 연단이니 고난이니 하면서, 벌벌 기게 만드신다.
적당히 믿으며, 육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희희낙낙하면서 잘도 살고, 원하는 대로 뜻을 이루며, 룰루랄라~ 베짱이 처럼 여유와 환희 속에 지내게 놔두시면서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은, 죽도록 수고하고 노력해도 거두는 것도, 이루는 것도, 모으는 것도 없게 만드시니, 이 어찌 불공평한 처사인가?
 
도대체 암울하고, 막막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무슨 기대와 소망이 있을까?
사람들은, 입을 삐죽이며 말한다.
'저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니 저가 도우실 껄..'
'저들이 기도하니 하나님이 돌보실 껄..'하며,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다윗도,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편 11:3-4절에 보면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이 질문이 우리의 질문이며, 다윗이 걸었던 길을 우리 또한 걷고 있다.
 
삶의 터가 기초부터 흔들리는 마당에, 의인들이 무엇을 할수 있겠는가?
젊은 선교사님들이, 참수를 당하고 경건한 사역자들이 몹쓸병에 시달리며 병상에 누워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의인들을 향한 온갖 술수와 음모와 공격이 판을 치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의인들에게 찾아오는, 갑짝스런 죽음들
의인들에게 찾아오는, 갑짝스런 부도와 실패들
의인들에게 찾아오는, 갑짝스런 몇가지의 시련과 기초의 흔들림들을 보노라면 괜실히,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좋으신 분인데
'과연 지금도 살아 계시는 걸까?'
'과연 나를 기억하시고 계심일까?'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이 기초부터 흔들리고 말도 안되는 살상과, 의인들의 고난이 파도처럼 엄습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성전에 여전히 계시며 하나님은 영원토록 무너지지 않고,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을 해석하고 이해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기를 간청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감당할 몫이다.
 
들판에서 양복대신 허름한 행색으로, 양똥을 치는 남루한 모세를 상상해 보라.
어떻게 그 모습 가운데서,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악에서 선을 이루시는 분이셨다.
손과 발에 수갑을 차고, 좁디 좁은 감옥에서 새우잠을 자고 잇는, 요셉을 상상해 보라.
어떻게 그 사람이, 나중에 한 나라에 총리가 되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요셉을 끌어 내어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느끼건 못 느끼건,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리고 당신의 일들과 목적을 위해, 우리가 모르게 뒤에서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다만, 그분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암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앞길이 막막하고 아무런 희망조차 사라진 순간에도,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며, 우리의 삶의 터가 다 무너진 순간에도 하나님은 무너지거나 요동치 않으시고, 우리편에 서 계신다.
내 삶은, 무너지고 요동하고 막막하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수억 수 천개의 은하계를 운전하시며, 작은 접촉 사고도 허락치 않으시고, 봄이 되면 꽃피게 하시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게 하는 일에, 일점 일획도 착오가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시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저항하면 안된다.
우주만물을 움직이시며 하늘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화를 기르시는 주님께서는 오늘도, 알게 모르게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우리를 더 귀하고 값진 곳에, 더 소중하게 쓰시려고 무정하게 연단하시고, 혹독하게 훈련하시고 계시는 중이시다.